작년 홍콩 휴가 첫날 밤 나는 침대에 엎어져서 꺼이꺼이 울었다. 잠이 오지 않아 틀었던 호텔방 tv에서 하필 이누도 잇신의 '우리개 이야기'를 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그것도 틀자마자 마지막 에피소드가 나올줄은 꿈에도 몰랐다. 나는 거북이 젤리와 망고 쥬스를 먹으며 영화를 보다가 소리내어 울기 시작했다. 엉엉엉 울었다. 꺼이꺼이 울었다. 흐느끼며 울었다. 다니구치 지로의 '개를 기르다'를 읽으면서도 그랬다. 의아할 정도로 담담한 그림체와 필체로 써내려간 이 임종 체험기는 뭐 그렇게까지 슬플게 없었다. 그런데 책을 덮고 나서 커버에 적혀있는 "너를 지켜보고 있자니 그저 눈물이 흐른다"라는 문구를 보는 순간 갑자기 눈물이 터져나왔다. 꺼이꺼이 엉엉엉 흐느끼며 울진 않았지만 왠지 서러웠다. 그래서 울었다.
도쿄행 비행기와 호텔방을 예약하고 집에 전화를 했더니 개가 아프다고 했다. 원래 몸이 좋지 않았다. 미니어쳐 종도 아니고 머그잔 강아지도 아닌데 워낙 작게 태어난 개였다. 그래서 어릴 때도 병치례를 좀 했다. 요도결석이 생겨서 어쩔 수 없이 중성화수술을 해야만 했던 개였다. 우리 집안 사람들 특성상 병이 아니었다면 그깟 귀찮은 붕가붕가 쯤 참아가면서 중성화수술 하지 않고 키웠을 것이다. 그런데 정말로 심각하게 아프기 시작한 건 작년 부터였다. 폐가 좋지 않아 숨을 쉬지 못했다. 아빠는 숨이 넘어가는 개를 안고 병원으로 달려갔단다. 산소 호흡기를 끼고 하루밤을 지내고 약을 타먹자 금새 또 좋아졌다. 그러나 예전 상태로는 돌아오지 못했다. 몇달 간격으로 그런 일이 반복됐다. 고향집에 내려가면 매번 상태가 틀렸다. 어떤 달은 숨소리가 씩씩했고 어떤 달은 숨소리가 너무 약하고 거칠어서 그걸 듣는것만으로도 내 다리에 힘이 풀렸다. 얘 어떡해. 왜 숨을 이렇게 쉬는거야. 엄마가 말했다. "걔도 이제 열살이잖아. 슬슬 준비를 해야지". 하지만 최근에는 이상할 정도로 힘도 좋고 먹성도 좋았다. 그래서 다들 안심했다. 우리 집안이 원래 명이 좀 질겨. 농담도 해가면서 안심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정말로 힘들거 같다. 아니. 힘들거 같단다. 그냥 아픈게 아니라 확실히 너무너무너무 늙어서 기력이 쇠한거다. 며칠전에 또 숨을 못쉬어서 병원으로 달려갔더니 의사가 그랬단다. "얘는 이렇게 오래 잘 산게 기적이에요". 아빠는 휴가를 반납했다. 원래 별 내색 안하던 사람이 엄마한테 그랬다더라. "뽀삐 묻어주고 휴가가야지". 우리개는 유독 아빠를 잘 따랐다. 엄마나 동생만 보면 으르렁거리며 신경질을 벅벅 부리던 놈이 아빠가 퇴근하면 온갖 알랑방구를 다 뀌는 탓에 다들 그랬다. 저 새끼. 전생에는 아빠 첩이었을거야. 그래도 나한테는 순했다. 아빠랑 비슷하게 생겨서 아빠 대용품 쯤으로 생각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니 그것보다는. 고향만 내려가면 내가 죽고 못살아 옆에 끼고 부비고 물고 빨고 했던 덕에 저도 "얘가 날 좋아하긴 하는구나" 싶었을거다. 그런데 그렇게 요크셔테리어답게 거만하던 개가 정말로 늙고 지치고 아프고 기력이 쇠해서 죽을거라는 말을 듣는순간 갑자기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아직 열살밖에 안됐잖아. 어떤 개들은 스무살도 산대. 살거야. 더 살거야.
오늘 집에 전화를 했다. 엄마가 말했다. "아직 잘 버티고 있네. 니 보고 가려고 기다리나 보다. 아까 나랑 약속했는데 다음에는 꼭 사람으로 태어날거래". 나는 갑자기 울고 싶어졌으나 눈물은 나지 않았다. 동시에, 골치아프게 사람으로 태어나지 말고 꼭 다시 개로 태어나라고, 지금처럼 사랑해주는 인간들이 있는 개로 태어나라고 빌었다. 그래도. 그래도. 나는 개가 오래 살았으면 좋겠다. 숨못쉬는 폐가 거추장스럽고 배뇨 조절이 안돼서 달고있는 기저귀가 귀찮은데다가 영 스타일도 안살더라도, 그래도 딱 하루라도 더 살았으면 좋겠다. 모든 개들은 천국으로 간다잖아. 그러니 걱정말고 조금만 더 옆에서 살다가 가라. 너 가면 나 어떡하니. 너는 love of my life야 이 개새끼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