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프닝>에서 사람을 죽이는 건 독소를 내뿜는 식물입니다. 반전과 스포일러 유출을 근거로 고소장을 제출한다면 성실하게 법정에 서 드리겠습니다. 그러나 솔직히 말해봅시다. <해프닝>은 반전도, 반전으로 인한 스포일러도 없는 영홥니다. <해프닝>은 재난 영홥니다. 그것도 존 윈담의 ‘걷는식물 트리피드’나 스필버그의 <우주전쟁>을 연상시키는 전통적인 SF 재난영화죠. 중요한 건 왜 식물들이 독소를 내뿜느냐는 겁니다. 사먈란은 이미 영화 초반부에 과학교사인 주인공의 입을 빌어 썩 믿을만한 가설을 하나 제시합니다. 인간을 위협인자로 인식한 식물이 독소를 뿜어내 자살을 유도한다는 거죠. 이를테면 옥수수나 담배는 해충의 구강분비물을 감지한 뒤 화학물질을 내뿜어 천적을 유인합니다. 식물도 소극적이지만 효과적인 자기방어를 할만큼 지능적인 존재라는 거겠죠.
샤말란은 가설을 내놓은 다음부터 주인공들의 생사를 건 엑소더스에만 온전히 집중합니다. 엘리엇의 가설 이상의 속시원한 과학적 논리를 <불편한 진실>식으로 덧붙일 필요도 없다고 여기는 듯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평가와 관객들은 모두 하나의 질문을 가슴에 안고 샤말란의 영화를 보러갑니다. 반전이 뭐냐는 겁니다.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한탄합니다. 반전이 왜 이 모양이냐!(<해프닝>의 경우에는 ‘반전이 어딨냐!’). 물론 샤말란에게도 절반의 책임은 있습니다. 그는 ‘브루스 윌리스가 귀신 혹은 수퍼히어로’라는 역사적 반전을 두개나 만들어내며 데뷔한 감독입니다. 이 모든 ‘반전 광풍’에 대한 책임을 일정정도 질 필요는 있는 거죠.
그런데 곰곰히 생각해봅시다. <식스 센스>와 <언브레이커블> 이후, 샤말란이 반전에 온전히 목을 매는 영화를 만든 적이 있었던가요. 그의 최고작 중 하나인 <싸인>은 반전이라는 게 없는 영홥니다. 외계인의 침공은 영화 중반에 이미 밝혀집니다. 샤말란은 그 시점에서부터 시침 뚝 떼고 ‘외계침공 SF 장르’와 ‘종교적인 인간 드라마’를 참기름에 밥 비비듯 비벼버립니다. 허무한 반전으로 집중포화를 받았던 <빌리지>에서도 샤말란은 반전을 거의 쓸모없는 추신처럼 다룰 따름입니다. 그가 <빌리지>에서 정말로 집중하는 것은 고통을 안고 산으로 기어올라간 인간들의 비극입니다. 샤말란의 장기는 반전이 아니라 초현실적인 SF, 판타지 장르의 컨벤션과 현실적인 인간 드라마를 결합하는 서커스죠. 그리고 대게의 경우 샤말란은 곡예에 성공하는 편입니다. <레이디 인 더 워터>는 어떠냐고요? 비평가들의 악담에도 불구하고 <레이디 인 더 워터>는 너절한 곡마단 서커스는 아닙니다. 이 영화가 <하워드 덕> 이후 최악의 졸작 중 하나로 평가받는 진짜 이유는 이걸 실제로 본 사람이 별로 없다는 겁니다.
반전에 대한 열망을 거두고 본다면 샤말란의 <해프닝>은 훌륭한 샤말란식의 윤리적 우홥니다. 그는 언제나 한가지 질문을 던집니다. 인간 존재의 근원을 흔드는 초현실적인 사건 앞에서도 인간은 윤리와 사랑을 지켜낼 수 있을까. 그는 언제나 "그렇다"고 답합니다. 주인공 커플이 얄팍한 방식으로 화해하는 과정이 좀 신통찮은건 사실이죠. <해프닝>의 가장 큰 약점은 샤말란이 <싸인>이나 <빌리지>에서처럼 주인공들의 내밀한 감정을 섬세하게 화면에 투영하지 못한다는 겁니다(도무지 뉘앙스라고는 없는 배우 마크 월버그의 책임도 분명히 있다는 걸 지적하고 넘어갑시다). 하지만 마지막 장면의 화해를 납득하지 못할 이유는 없습니다. 샤말란은 스필버그가 아닙니다. 그는 남겨진 톰 크루즈의 얼굴을 불안하게 비추며 영화를 닫는 스필버그처럼 모질지 못합니다. 샤말란은 로맨티스트에 가깝습니다.
샤말란이 <해프닝>으로 증명한 또다른 능력은 천부적인 테크니션으로서의 자질입니다. 그는 거의 아무런 특수효과도 사용하지 않습니다. 엘리엇 일행이 벌판을 가로지르는 장면에서 샤말란은 들풀과 나뭇가지를 흔드는 바람을 <쥬라기 공원>의 랩터처럼 이용합니다. 그리고 존 레귀자모가 독소가 퍼진 시내를 자동차로 달리는 장면에서 샤말란은 천으로 된 천장 구멍이 바람에 의해 펄럭이는 모습을 클로즈업으로 조용히 비춥니다. 심지어 이 영화에는 사람들의 지적처럼 불필요한 쇼크효과가 남발되는 것도 아닙니다. (독소를 품은) 바람이야말로 <해프닝>의 가장 무시무시한 쇼크효과죠. 제가 심의위원이라면 "등급을 낮추고 싶다면 바람을 삭제하라"고 했을겁니다.
많은 미국 비평가들은 "샤말란은 같은 아이디어와 이미지를 끊임없이 반복적으로 주입한다"고 불평합니다. 그런데 이게 언제부터 한 감독을 향한 불신의 근거가 된걸까요. 우리는 같은 아이디어와 이미지를 죽을때까지 반복하며 영화를 만들었던 거장들의 이름을 얼마든지 내놓을 수 있습니다. 비평가들은 영화가 논리적으로 재난을 설명하지 못한다고 비난합니다. 우리가 언제부터 히치콕의 <새>로부터 논리적인 설명을 요구했던가요. 새는 그냥 날아들었고 바람은 그냥 불어왔을 뿐입니다. 중요한 건 초자연적인 공격에 대응하는 인간의 불안과 그걸 플롯으로 직조해내는 샤말란의 능력입니다.
<해프닝>을 가장 잘 홍보하는 방법은 "식물들이 인간을 공격한다"는 카피로 이것이 전통적인 재난영화임을 내세우는 겁니다. 샤말란의 영화에 거는 쓸모없는 기대를 애초에 봉쇄하는 겁니다. 이미 샤말란은 <싸인> 이후부터 소모적인 반전에의 집착을 스스로 무너뜨리기 시작했습니다. 집착을 거두어야 하는 사람은 샤말란이 아니라 관객과 비평가들, 그리고 비밀 반전 마케팅의 엉터리같은 효과를 맹신하는 홍보 담당자들입니다. <해프닝>에는 그들이 보고 싶어하는 것은 아무것도 일어나지(Happening) 않습니다. 무시무시한 바람(혹은 바램) 뿐입니다.